이 챕터에서 하이에크는 영국의 정치서적 대부분이 독일에서 서구문명에 대한 믿음을 파괴하고 나치즘을 성공으로 이끈 심리 상태를 창출했던 서적과 상당히 유사하며, 영국이 자신들에게 독일에서 일어난 일(나치즘의 등장)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으면서 오히려 독일과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도 못할 정도로 전체주의 발상이 스며드는 게 아닌가라고 우려한다.
권력당국이 조직의 가면을 쓰게 되면, 자유로운 사람들의 공동체를 전체주의 국가로 전환시키기에 충분한 매력을 만들어간다.
조직화에 대한 찬양
어느 자유주의 국가가 알게 모르게 사회주의의 길로 접어들 위험이 있다는 징조는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 책에서 말한 몇 가지 예시를 들면:
국가에 대한 칭송이 늘어나고, 권력과 거대함 자체를 점점 찬양하고, 모든 걸 조직화(소위 '계획')하려는 일에 열광하고, 유기적인 자생적 성장이라는 단순한 힘에 어떤 것도 맡기지 못하는 태도가 생긴다.
더 나아가 유구한 전통 등 과거의 모든 문화적 연결을 파괴하려 들고, 거대 조직화도 모자라 평화 시기에서조차 전시처럼 산업활동이 이루어져야 하고, 규제 체제의 목적이 개인주의를 끝장내고 개인의 더 큰 행복이 아니라 최고의 능률을 달성하기 위해 국가의 조직화된 통일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거침없이 나오게 된다.
이런 주장은 평시에도 전시처럼 산업활동이 동원체제로 유지되어야 하고, 개인주의를 끝내고 규제체제를 확립하며, 그 목적은 개인의 더 큰 행복이 아니라 최고 능률을 달성하기 위한 국가의 조직화된 통일성을 강화하는 게 목적이라고도 주장한다.
이런 전체주의적 사상 저술가들은 대부분 신실한 이상주의자이고 지적으로도 상당히 뛰어난 경우가 많다.
과학자들의 전체주의
책에서는 과학자들의 사회적 조직화 또한 우려하고 있다.
→ 과학자라고 표현은 하지만, 소위 ‘인텔리’라 하는 지식인이라 해도 무방하겠다.
상위 계층부터 철저히 조직화하려는 발상은 1) 이성의 성급함, 2) 보통사람의 평범한 방식을 용인하지 않음, 3) 과학적 청사진에 따라 소위 우월한 자들이 조직화하지 않은 모든 걸 경멸, 4) 교육 체계가 인문에서 실용분야로 바뀌는 현상이 발견될 때 드러날 것이다.
→ 자칭 진보적인 세계로 나아가는 걸 이끄는 지도자들이 그 어떤 계급보다 자진해서 새로운 독재의 수하로 나서는 격.
사회가 전체주의로 넘어가면서 이런 지식인들은 과학이 도덕까지 포함해 사회 모든 분야에서 유능하고, 역사가 과학적 법칙에 순종한다는 도그마를 설파한다.
→ 이 도그마는 권력을 잡은 무리들이 가장 싫어하는 두 가지 현실, 개인의 자유와 인간의 역사적 역할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조직화된 자본과 노동력 - 전체주의를 추진하는 위험한 동력
조직화된 자본을 꾀하는 조직가들의 목적은 전체주의체제가 아니라 조직화된 산업이 준독립적이고 자치적인 영역을 가지는 일종의 협동조합 사회를 노리는 것이다.
경쟁사회에서는 위험을 감수한 기업가가 성공의 열매를 누리겠지만, 전체주의에서 정부의 지지를 등에 업은 기업가는 정부가 주는 권력과 급료에 더는 만족할 수 없게 된다. 독점 지위를 얻기 위해 계획경제 기업가들은 다른 집단이 어느 정도 이익을 나누어 가지고, 독점 형성이 공익에 부합한다고 다른 집단을 설득해 이런 독점적 지위를 얻는다.
좌파가 벌이는 경쟁을 반대하는 선전이 이런 여론의 변화를 주도한다.
독점을 막으려는 조치도 실제로는 독점 강화에 일조하는 경우도 많다. 독점을 갖춘 하나의 기득권층을 공격하면 또 다른 기득권층이 나타난다. 국가가 보호하는 독점은 잠재적 경쟁뿐만 아니라 효과적 비판까지 막아버리기에 독점이 사회에 득이 될 경우는 거의 없다.
→ 독점 비판은 곧 국가 비판이 되기 때문이다.
독점이 불가피하다면, 책에서는 미국의 사례를 들며 국가가 사적 독점을 강하게 통제해 비정상적인 이윤이 발생할 여지를 주지 않을 정도로 엄격히 가격을 통제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를 통해 다른 기업이 같은 산업에 참여해도 비정상적인 이윤을 얻지 못하게 막고, 독점자의 지위를 경제정책의 매를 맞는 입장에 놓아 경쟁을 통해 더 나은 대체제가 나오게 자극할 수 있다.
→ 역으로 정부가 독점자와 결탁하면 무너질 수 있기에 정부의 강한 도덕성이 요구되는 어려운 과제로 보인다.
그렇다면 특권과 싸워 원래 목적에 봉사하는 노동운동은 어떻게 독점 체제를 지지하게 되는 것일까?
이들 독점가들의 이득을 나눠 받고, 독점을 지지하는 게 공정하고 질서정연한 사회를 창출하는 길이라고 믿는 대다수가 독점을 지지하고, 노동운동이 소위 '미친 경쟁체제를 끝장내자'라고 주장하고 노동운동 자체가 특권을 얻으려는 투쟁에 들어가면서 조직화된 자본과 노동이 한 배를 타게 된다.
시장질서를 파괴하려고 열심인 사람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명령질서를 창출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 경쟁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면서 균형 잡힌 경제, 중앙집권적 생산을 통한 공동체 소비, 계획된 사회가 자유방임 사회보다 훨씬 자유롭다고 무식할 정도로 순진하게 주장을 펼치는 자들을 조심해야 한다.
위대한 민주적 운동이 틀림없이 민주주의의 파괴를 초래할 그런 정책을 지지하고, 또 그 운동을 지지하는 대중들 가운데 소수의 소수의 집단에게만 혜택을 주는 그런 정책을 펴는 것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 슬픈 광경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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