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후 체포되어 뤼순 감옥에 갇힌 뒤, 1909년 12월 13일부터 적기 시작하여 1910년 3월 15일 탈고한 자서전적인 옥중 수기로 《안중근의사 자서전》이라고도 한다.
안타깝게도 원본은 전해지지 않다가 일본어 번역본과 한문 등초본 등이 차례로 일본에서 공개되어, 1970년대 《안중근의사 자서전》이라는 제명으로 번역·간행되었다고 한다. 목차 없이 탄생부터 가족의 일화, 동학당 퇴치, 천주교 입교, 지방관의 학정과 부패에 대한 저항, 의병전쟁 참여, 이토 히로부미 저격, 검찰과 재판관의 심문과 공판과정 등 시간 순서대로 기록되었으며 무엇보다 안중근 의사 본인이 직접 쓴 자전이라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크다.
안응칠이라 불리던 어린 시절 일화, 천주교 입교, 동학군과 싸운 이야기, 며칠을 굶으며 일본군을 피해 도망 다닌 이야기, 이토 거사 계획 등 굵직한 부분을 흥미롭게 읽었다.
책을 읽으니 전반적으로 안중근은 문인보다는 의협심 강하고 기골이 장대한 무인 느낌이 났는데 의리를 중시하고, 술과 노래를 좋아하고, 사냥을 즐기는 등... 소위 상남자 포스를 젊은 시절에 풍기고 다닌 것을 알 수 있다.
책을 보고 처음 알게 된 일화도 있는데, 안중근이 기방에서 기생과 놀다가 기생 보고 뛰어난 자태와 얼굴로 돈 많은 남자들한테 빌붙는 대신, 호걸 같은 남자와 짝을 지어 같이 늙으면 어떻겠냐고 훈계 아닌 훈계를 하다가 기생들이 수긍하지 않고 자신을 미워하거나 공손하지 않은 태도를 보이자 기생들에게 욕을 하거나 매질을 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토 저격 과정을 이 책에서는 생각보다 간략히 묘사하고 있는데, 다른 역사 자료에서 밝히듯 이토의 얼굴을 처음엔 못 알아봤다거나 거사 후 '코레아 우라!'를 외쳤다는 내용은 없었다. 이런 부분이나 거사 직후의 심정을 안 의사가 직접 밝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의외로 무덤덤하게 적은 부분은 살짝 아쉽긴 하다.
하지만 책 다른 장에서 이야기된 나라를 빼앗긴 것에 대한 울분 토로, 의병 활동과 조직이 와해되며 겪은 시련, 그리고 아래 서술할 이토 처단 15가지 이유를 통해 안중근 의사의 동기와 심정은 충분히 느껴진 것 같다.
9시쯤 되어 드디어 인산인해를 이룬 가운데 이토가 탄 특별열차가 도착했다. 이토가 열차에서 내렸다. 군대가 경례하고, 군악대 연주소리가 하늘을 울리며 귀를 때렸다. 나는 곧바로 군대가 늘어서 있는 뒤에까지 이르러 앞을 보았다. 러시아 일반 관리들의 호위를 받으며 맨 앞에 누린 얼굴에 흰 수염을 가진 늙은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저것이 필히 늙은 도둑 이토일 것이다”라고 생각한 나는 곧 단총을 뽑아들고 그의 오른쪽 가슴을 향해 신속히 네 발을 쏘았다. 다시 뒤쪽을 향해 일본인 단체 가운데서 가장 의젓해 보이며 앞서 가는 자를 향해 다시 세 발을 잇달아 쏘았다.
검찰관이 이토 히로부미를 쏜 이유에 대해 심문할 때 안중근 의사는 아래와 같이 15가지 이유를 말했다.
- 한국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요.
- 한국 황제를 폐위시킨 죄요.
- 5조약과 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요.
- 무고한 한국인들을 학살한 죄요.
-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요.
- 철도·광산·산림·하천 등을 마음대로 빼앗은 죄요.
- 제일은행권 지폐를 발행, 마음대로 사용한 죄요.
- 군대를 해산시킨 죄요.
- 교육을 방해하고 신문 읽는 권리를 금지시킨 죄요.
- 한국인들의 외국 유학을 금지시킨 죄요.
-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워 버린 죄요.
-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퍼뜨린 죄요.
-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에 분쟁이 쉬지 않고 살육이 끊이지 않는데, 한국이 태평무사한 것처럼 위로 천황을 속인 죄요.
- 동양평화를 파괴한 죄요.
- 일본 현 천황의 아버지 효명천황을 살해한 죄라고 했다.
요약하자면 안중근 의사가 어떻게 의협심 강하고 강직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는 책이며, 책 분량도 많지 않아 반나절이면 충분히 끝낼 수 있다.
여담으로, 일본 법을 적용하여 안중근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사람이 오시마 요시마사(大島義昌)였는데 공교롭게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고조할아버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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