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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슬픈 외국어> 후기 - 하루키식 자전적 에세이

명상회상공상 2023. 10. 30.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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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로, <슬픈 외국어>의 개정판이다. 원판이 나온 지는 한참 되었는데 하루키 스타일에 맞게 원서 제목을 살리고, 에피소드마다 뒷이야기도 싣고, 디자인까지 업그레이드되었다.

이윽고 슬픈 외국어 책표지

책 내용을 빌려서 말하자면 외국어를 못해서 슬픈 게 아니라, 자명성(obviousness)을 지니지 않은 외국어에 둘러싸여 있다는 상황을 슬프게 한다는 걸 내포한다는 게 '이윽고 슬픈 외국어'가 뜻하려는 바이다. 모국어라도 과연 우리에게 자명한 것일까?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고, 아무리 외국어가 유창하다고 해도 개인과 개인의 마음이 쉽게 통하는 건 아닐 수도 있기에 슬픈 것이다.

어디에 있더라도 우리 모두는 어떻게 보면 이방인이고, 그렇게 어슴푸레한 영역에서 우리가 명확히 안다고 생각하는 게 우릴 배신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그건 그거대로 슬프다는 걸 말하고 싶은 모양이다.

 

대개 몇 개 국어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해도 나라는 인간이 타인에게 전할 수 있는 건 어차피 한정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번역에 있어서 뭔가를 취하고 뭔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뭔가를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취사선택'이라는 것은 번역 작업의 근간에 있는 개념이다.

동질감과 소속감, 계급의식(책에서는 히에르라키hierachy라고 표현)이 책에 소개한 여러 가지 내용을 관통하는 것처럼 보였다. 일본, 미국 중 어디가 더 낫거나 맞다고 하기보다는 '여긴 이렇군'이라고 소개하는 내용이 눈에 자주 띄었다. 

 

예를 들면, 프린스턴에 살았던 시절, 무엇을 취향을 두고 은근 거리감을 두는 지적 허영(snobbism) 에피소드에서는 지역지대신 뉴욕타임스를 구독해야 하고, 미국맥주 대신 수입맥주를 마셔야 하고, 대중음악 대신 클래식과 지적인 재즈를 들어야 올바르다(correct)고 여기는 인텔리들의 엘리트 의식을 이야기하며 미국이 일본보다 더 계급적인 사회라는 느낌이 든다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사회의 대중화, 평준화가 몇 단계 더 빨리 찾아온 일본에서는 전국적으로 대량으로 쏟아지는 정보에 대중이 우르르 갔다가 또 다른 곳으로 우르르 몰려가기에 프린스턴의 분위기처럼 "여기선 이렇게만 해두면 된다"는 모양새만 갖추고 나머지는 원하는 페이스대로 하는 게 어느 정도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의견도 나타내고 있다.

 

그 밖에도 유난히 소속 회사나 관청 이름, 직급, 심지어 수능 점수까지 일일이 소개하며 하나의 아이덴티티이자 가치관으로 삼는 해외 파견 일본 엘리트, 신청하고 번호표 받고 뛰기만 하면 되는 미국 레이스와는 달리, 칼같이 신청 기한을 정하고, 선수 명단 책자를 만들고, 그 책자에 러너 이름에 소속 단체명을 반드시 표기하는 일본 레이스의 차이점 등... 문화적 차이로 깨달은 것을 소개하는 내용도 있다. 

 

지금 쓰는 포스팅 초반을 되짚어 보면, 일본에서 자명적이라고 여겼던 많은 요소가 미국 생활을 통해 사실은 자신을 배신한 것 같다는 관찰담과 경험담을 통해 깨달은 걸 반영하는 에세이처럼 느껴진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자명하다고 생각하는 이런 것들이 정말 우리에게 자명한 것일까"라는 생각에 왠지 모르게 슬퍼진다.

본문 중 하루키는 자신이 꽤 많은 소설을 써왔어도 현실에서는 엄청나게 재미있는 일은 경험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본인에게는 대단하지 않은 해외살이 경험도 이렇게 에세이를 내는 것을 보면 대단한 경험처럼 보인다. 경험담에 살을 붙이는 능력은 역시 소설가라고 할 수밖에 없겠다.

 

자전적인 에세이로 약간의 회의감이나 허무함 같은 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하루키 개인이 경험한 단면을 재미있게 풀어쓰기에 가볍게 읽을 만하다는 건 변함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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