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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인간> 요약/후기 - 어른이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명상회상공상 2025. 4. 29.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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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전락>으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미완성 소설 <최초의 인간>.
1960년 교통사고로 사망할 때 지니고 있던 가방에서 발견된 이 책의 원고는 손질도 하지 않은 카뮈의 생각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출간되었을 때도 판독 불가능한 부분은 대괄호, 여백 등으로 표시되었고, 결말 없이 갑자기 내용이 끝난다.

알베르 카뮈 최초의 인간




알베르 카뮈 = 자크 코르므리

소설의 형식으로 자크 코르므리라는 주인공을 빌려 카뮈는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만 같았다. 카뮈의 아버지는 제1차 세계대전 마른 전투에서 전사했고. 외할머니와 귀머거리 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소설 속 주인공 자크 코르므리도 똑같은 배경이 있다.
프롤로그 격인 자크의 출생을 지나 이어지는 장에서는 40살이 된 자크가 29살에 전사해 앞으로도 영원히 29살로 남을 아버지 묘비를 찾아간다. 40년 동안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로 살면서도 낯선 땅에서 죽은 이 사내가 누구였는지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채 훌쩍 시간이 지나갔다. 그래서 자크는 고통과 연민을 안고 아버지에 대해 알아가기로 한다.

그러자 그때 문득 굽이쳐 와서 그의 가슴속을 가득 채워 놓는 정다움과 연민의 물결은 고인이 되어 버린 아버지를 향하여 아들이 느끼는 영혼의 충동이 아니라 억울하게 죽은 어린아이 앞에서 다 큰 어른이 느끼는 기막힌 연민의 감정이었다.

자크의 성장기

말랑과의 재회를 시작으로 자크는 아버지의 족적을 찾아 나선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얻는 대신, 만나는 사람마다 기점으로 해서 자크의 어린 시절이 상세히 묘사된다. 귀머거리지만 활력 넘치고 쾌활하며 자크를 사냥에 함께 데리고 가준 삼촌, 자크가 아이들과 놀다가 늦게 돌아오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매를 드는 할머니, 가난의 도피처이자 배움의 갈망을 충족시켜 주는 학교 등...
작가가 전하려고 한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아버지가 정착할 낯선 땅에서는 저마다 ‘최초의 인간’이었듯, 세상에 홀로 서는 자크도 자기 나름대로 최초의 인간이라는 걸까?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추억을 되짚다 보면 되려 자크 본인의 삶을 돌아보며 정체성을 찾는 여행이 된 게 아닌가 싶다.

...그가 오랜 세월의 어둠을 뚫고 걸어가는 그 망각의 땅에서는 저마다가 다 최초의 인간이었다. 또 그 땅에서는 그 역시 아버지 없이 혼자서 자랐을 뿐, 이야기를 해도 좋을 만한 나이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아버지가 아들을 불러서 집안의 비밀을, 혹은 오랜 옛날의 고통을, 혹은 자신이 겪은 경험을 이야기해 주는 그런 순간들, 우스꽝스럽고 가증스러운 폴로니어스조차 레어티스에게 말을 함으로써 돌연 어른이 되는 그런 순간들을 그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었다...

 

여름방학이 되면 가난한 집안에 생계를 보태려고 일을 하고, 삼촌이 어른이 다 됐다며 칭찬하는 순간, 집안의 가난을 덜어 주었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비로소 자유롭다고 여기며 아무것에도 복종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그 순간에 자크는 매서울 정도의 긍지가 마음속에 차오르는 걸 느꼈고, 비로소 어른이 됨을 느꼈다. 세상에 홀로 설 준비가 될 최초의 인간이 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어리둥절하고 순진무구한 아이는 이제 없고 더는 할머니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어른이 되었음을 느끼는 순간은 이렇게 밀물처럼 찾아왔다.


책에서는 주위 배경을 아주 뛰어나게 묘사하는데, 에티엔 삼촌을 따라 간 사냥터 묘사며, 자크가 본격적으로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올라탄 전차의 움직임, 전차 옆으로 휙휙 지나가는 선로와 마차, 그리고 양옆에 네모난 기둥이 받치고 있어 일렬로 늘어선 아케이드 등... 한 단락이 두 페이지는 넘어갈 정도로 꽉꽉 채워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물론 닭 잡는 묘사도 너무 생생해서 소름 돋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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