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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2부 - 호모 사피엔스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다> 요약/후기 - 인간은 최고의 스토리텔러

명상회상공상 2025. 2. 6.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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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의 저서 <호모 데우스> 2부에서는 1부 결론을 토대로 어떻게 우주가 인간 중심으로 돌아가고, 모든 의미와 권위가 인간에게서 나온다는 인본주의를 신봉하게 되었는지 밝히고 있다.

 

호모 데우스 유발 하라리


 
인간은 최고의 스토리텔러

인간 협력 네트워크는 허구라는 스토리텔링 아래 이뤄졌다. 사피엔스가 정점에 우뚝 설 수 있던 건 이 협력 네트워크의 힘이 한몫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생활에 수없이 들어온 개념들이 허구인지 아닌지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인간 네트워크 역사를 검토할 때는 실재하는 실체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게 좋다.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된다. 신전이 불타면, 화폐가 가치를 잃으면 신과 은행이 고통을 느낄까? 그렇지 않다. 단지 은유적인 표현이다.

 

이야기는 인간사회의 토대이며 기둥이고, 역사가 전개되면서 신, 국가, 기업에 대한 이야기들이 점점 힘을 길러 객관적 실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허구가 나쁜 건 아니다. 돈, 국가, 기업이라는 허구적 실체가 통용되니 복잡한 인간사회가 돌아간다. 단, 허구는 단지 도구일 뿐이며, 그것이 궁극적인 목표나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실제에 대한 감각을 잃고 기업을 위해 돈을 벌거나, 국익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사태가 발생한다.

 

우리는 우리를 도우라고 그것들을 발명했다. 그런데 왜 그것들을 위해 우리의 생명을 희생하는가?

근대 과학은 종교와 어떤 관계일까?

서로 앙숙이 될 수 있고, 서로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과학의 빛이 종교의 어둠을 내쫓고 세상을 세속적, 이성적으로 변하게 하고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했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만 다루는 과학에 종교의 윤리적 판단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 인간은 산소 없이 살 수 있지만, 범죄자를 질식시켜 사형시켜도 괜찮은가?)

근대부터 과학과 종교 사이는 투쟁처럼 보이지만, 각기 다른 진리를 지지하기에 충돌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종교는 다른 무엇보다 질서에 관심을 두고, 사회 구조를 만들고 유지하는 걸 목표로 한다면 과학은 연구를 통해 질병을 치료하고 전쟁하고 식량을 생산하는 힘, 다른 무엇보다 힘에 관심이 많다. 근대사는 과학과 특정 종교, 즉 인본주의 사이 게약 과정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한 관점이라고 책에서는 말한다. 근대 이후 사회는 인본주의 교의를 믿고, 그 교의에 도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행에 옮기려고 과학을 이용한다. 

 


신이 중심인 사회에서 인본주의로

과거에는 장대한 우주적 계획이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했다면 인본주의는 역할을 뒤집어 인간의 경험이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도록 한다. 믿음의 중심이 신에서 인간으로 넘어온 것이다.
느끼는 감정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어떤 정책과 경제 조치가 좋은 건지 이제는 신에게 묻지 않고 개개인이 내면의 감정을 참고해 선택을 내리게 된다. 비슷한 방식이 예술에도 적용되는데, 과거에는 영감이 신에게서 나왔다고 했다면 오늘날에는 인간 감정이 창조와 미적 가치의 유일한 원천이라고 믿는다.
예시로 전쟁에 대한 그림 묘사도 달라졌는데, 과거에는 황제, 장군 등의 영웅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일반 병사의 비극은 영웅적인 행위로 벌충되었지만, 현대에 들어서 영웅적 행위는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일반 병사와 병사가 느끼는 경험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피터르 스나여르스 <바이센베르크 전투>(1620) vs. 오토 딕스 <전쟁>(1929~1932)

바이센베르크 전투오토 딕스 전쟁
좌 - 피터르 스나여르스 <바이센베르크 전투>(1620) / 우 - 오토 딕스 <전쟁>(1929~1932)

 


세 갈래 인본주의

인본주의는 크게 자유주의, 사회주의적 인본주의, 진화론적 인본주의로 나뉜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 자유주의 - 개개인의 독특한 경험을 찬미하고 다른 누군가를 해치지 않는 한 마음껏 표현하고 탐색할 자유가 있다. 개개인의 경험과 감정을 중요시한다. 자유주의 정치와 경제에서는 고객과 유권자가 항상 옳다.
  • 사회주의적 인본주의 - 자유주의와는 달리 타인이 어떻게 느끼고 내 행동이 타인의 경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심을 둘 것을 요구한다. 개인의 자아탐구를 권하지 않고 개인을 위해 대신 세계를 판독해 줄 강력한 공동 기구 설치를 주장한다. 사회주의 정치와 경제에서는 정당과 노조가 항상 옳다고 여기는 식이다. 
  • 진화론적 인본주의 - 갈등을 오히려 박수칠 일이라고 주장한다. 갈등 속에서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이들보다 우월하고, 최적자가 다른 모든 걸 누른다(소위 적자생존의 법칙). 이들에게 전쟁(=갈등)은 가치 있고 필수적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다윈주의 진화론을 철저히 받아들인 이 사상에서는 점점 강해지는 인간이 나중에는 초인간을 낳는다고 주장한다. 나치라는 극단적 형태는 특정 민족을 이런 인류 진보의 엔진으로 간주해 가로막는 건 뭐든 절멸시켜야 마땅하다고 결론지었다.

 

1914년~1989년까지 이 세 분파 사이 살벌한 전쟁 끝에 자유주의가 인본주의 종교전쟁에서 승리했더라도 성공 자체에 파멸의 불씨가 들어있을 수 있다. 현재의 영예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승리자로서 자유주의는 인류에게 불멸, 행복, 신성을 추구하라고 강요하면서 인간이 앞으로 수명, 행복, 힘을 극대화하려는 것은 불 보듯 훤하다. 이 과정에서 나올 새로운 포스트 인본주의 기술은 인본주의가 신봉한 감정과 경험을 뒤흔들 수도 있다. 

 

우주 전체가 인간 경험에 묶여 있는데 인간 경험이 슈퍼마켓의 다른 물건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설계 가능한 제품이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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