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스토아 철학의 대가, 로마 철학자이자 폭군 황제 네로의 스승으로도 알려진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가 쓴 "화에 대하여".
이 책에서는 화의 본질은 무엇인지, 정말 필요한 것인지,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극기심을 강조하는 스토아 철학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인간의 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이 짐승을 봤을 때 짐승이 화났다고 보이는 거랑 다르다. 짐승의 화처럼 보이는 건 격앙, 사나움, 공격성이라는 충동이고 인간의 화는 보복하고 싶은 욕망이다. 화는 야생동물이 아니라 인간에게만 있다.
인간 본성에 따라 인간은 자연적으로 악덕을 피하지만, 화는 악덕 중 하나인 앙갚음을 추구하게 한다. 마음에 이성이 없으면 통제를 잃게 된다. 누군가를 질책하더라도 질책은 상대에게 해를 가하는 게 아니라 해를 가하는 형식을 빌려 잘못을 고치는 게 핵심이다. 치료해야 할 환자에게 화내는 의사가 없듯이 꾸짖되 화를 내서는 안 된다.
분노가 사기를 높이고 용기를 자극하기에 화가 필요하다는 반론에 대해서 세네카는 화가 들어올 틈을 아예 주지 말라고 반박한다. 이성에 격정이 섞이는 순간 통제를 잃고 격정에 끌려 다니고, 원 상태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기에 애초에 화를 원천 차단해야 한다. 화가 나서 하게 되는 행동은 "내"가 없는 행동이다.
"적과 맞닥뜨렸을 때에는 화가 필요합니다"라는 주장에 세네카는 이때만큼 화가 불필요할 때는 없다고 반박한다. 적과 맞설 때는 공격적인 행동이 잘 통제되어야 하고, 명령에 따라야 하며, 자유행동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야만인들이 신체적으로 훨씬 더 강인하고 고난을 아주 잘 견디지만, 그들 자신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 자신의 가장 큰 적인 화 때문이다. 기술은 그들을 보호하지만, 화는 그들을 무방비로 만든다. 사냥꾼으로 하여금 다가오는 짐승을 잡거나 도망치는 짐승을 뒤쫓게 하는 것은 화가 아니라, 이성이다. 화는 무엇이든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것을 쓰러뜨리고 나아가게 하는 추진력이 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자기 파괴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화는 통제되는 것을 싫어한다. 그것은 만일 진실이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것 같으면 진실 자체에 점점 더 분노하게 된다. 그것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고함을 지르고 욕설과 저주의 말을 퍼부으며, 자기가 희생시키려고 작정한 사람을 끝까지 쫓아간다. 이성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이성은 말없이 조용히 일족의 뿌리를 뽑으며 나라에 해악을 끼친 자의 처자까지 모두 멸족시킨다.
철없는 아이에게 철없다고 화를 내고,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고 자연을 향해 화를 내지 않고, 배에 물이 스며든다고 화를 내는 게 아니라 물을 퍼내듯이 화는 부질없을 수 있다. 자꾸 생겨나는 악에 맞서 지속적인 노력을 하는 건 악을 근절하려는 게 아니라 우위를 점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사악한 자들이 우릴 무시하지 못하게 하고 물러나게 할 때 화가 도움이 되는가? 그렇지 않다고 세네카는 반론한다. 두려움을 일으키는 대상이 되는 건 증오의 대상이 됨을 의미하고 자신 역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많아짐을 말한다. 사람들이 화를 두려워하는 건 어린아이가 캄캄한 어둠을 무서워하듯 그 안에 확실하고 견고한 건 없다.
화는 마음에 절대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화를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나도 그때야말로 마음을 열심히 다스리고 대항해야 한다.
이성은 인내를 권하지만, 화는 복수를 재촉한다.
화는 솔직한 게 아니라 분별력 없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강력한 대처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화가 아니라 강인함을 보여야 한다.
아이를 교육할 때도 고삐를 쥐고 가끔은 박차를 가하기도 하면서 둘 사이에서 중용을 취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이에게 행동의 자유를 주면 기백이 자라고, 구속하면 기백이 눌린다. 오만과 화는 그 기원이 같아서 가끔은 아이들의 정신이 노예에게나 해당되는 비굴함을 겪게 해서는 안 된다.
친구들과 경쟁할 때 아이가 친구를 해롭게 하지 않는 정당한 승리를 원하고, 이것에 익숙해지게 해야 한다. 아이가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거나 칭찬받을 만한 일을 했을 때는 기를 북돋아주되 으스대게 해서는 안 된다. 기쁨은 의기양양함을 낳고 다시 교만함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오냐오냐 버릇없이 자란 아이들이 누구보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된다. 응석받이로 키울수록, 아이에게 너무 많은 자유를 줄수록 정신이 망가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아이를 키울 때는 입에 발린 칭찬을 멀리해야 한다. 아이에게 진실을 말해주어라. 가끔은 아이가 두려움을 알게 하라.
격정적인 화의 근본 원인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믿음이다. 이를 쉽게 믿지 않으려면 남을 비난하는 말에 쉽게 귀 기울여서는 안 된다. 그리고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일에 짜증을 내서는 안 된다. 물을 마시려는데 뜨겁다고, 책 글자가 작다고 무생물에게까지 화내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화의 최대 원인은 "나는 잘못한 게 없다"는 생각이다. 실상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뿐이다.
화를 내어 이기는 건 결국 지는 것이다. 다른 악덕은 이성에 대항하지만 화는 인간의 온전한 정신에 대항한다.
화에 대한 대비책으로 자신의 감정을 선동하지 말아야 한다. 악덕을 자극하는 일을 피하는 건 물론이고 육체적 피로(건강)에도 신경 써야 한다. 몸이 지치면 내면의 온화한 기운이 소진되고 날카로움만 남기 때문이다.
화에 대한 최고의 치유책은 유예다. 잠시 기다리면 처음에 끓어오르던 기세는 사라지고 앞뒤 안가리는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된다. 그리고 또 고통스러운 치유책으로는 화를 감추는 것이다. 이건 자신과 싸우는 일로 화를 극복할 의지가 있다면 화에 정복당하지 않는다. 화가 나는 신호를 내색하지 않고 최대한 숨겨야 한다. 화가 나를 버리게 기다리느니 내가 먼저 화를 버려야 한다.
스스로를 계속해서 불쾌함 속에 몰아넣고 자꾸만 화를 자극할 이유를 찾으려 해도, 언젠가는 너의 화가 스스로 떠날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힘이 점점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화가 제풀에 지쳐 물러가는 것보다 네가 화를 극복하는 편이 얼마나 좋은가!
책 마지막에서 세네카는 화를 내며 보내기에는 인생이 짧다는 걸 강조한다. 마음에 평정심을 유지하는 건 끊임없는 성찰, 공명정대한 행동, 고결한 목표 추구에 생각을 집중하면서 이뤄진다. 그런 면에서 화는 아무런 유익함이 없고 통제가 아니라 제거 대상이 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죽음 앞에서는 승자와 패자 모두 같은 결말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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