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클레스가 쓴 희곡으로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테베의 적이자 안티고네의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신 매장을 두고 안티고네와 테베의 왕 크레온이 벌이는 갈등을 극으로 풀어냈다.
이번에는 국문대신 영문으로 된 책을 먼저 접하게 되었다.
줄거리
안티고네에게는 두 오빠가 있었는데, 외국 군대를 동원해 테베를 침략한 폴리케이네스와 그런 테베를 지켜낸 에테오클레스였다. 둘 다 전투에서 사망하자 테베의 참주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의 장례식은 치뤄주고 테베의 적 폴리케이네스는 장례를 금지하고 시신을 짐승들이 뜯어먹게 두라고 지시했으며, 이를 어길 시 처형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안티고네는 오빠의 시신이 차마 그렇게 되는 걸 두고 볼 수 없어 크레온이 내린 국법을 어기고 장례를 치러 주었다가 발각되어 크레온에게 끌려 왔는데, 그러면서 왕이 내린 절대적인 국법이 앞서냐, 양심과 불문율을 따른 신법이 앞서냐를 두고 대립하는 게 줄거리이다.
실정법 vs. 자연법
안티고네는 도덕과 신의 불문율을, 크레온은 자신의 절대적인 권위를 통한 명령을 내세우는데 각각 자연법과 실정법을 대변한다고 여러 군데서 해석하고 있다.
법제처에 나온 실정법과 자연법 해석을 보자:
실정법이라함은 국가에 의하여 제정된 법으로서 과거 또는 현재에 시행된 법을 말하며 자연법과 대립되는 개념이다. 자연법이라 함은 모든 시대와 장소에 적용될 수 있는 영구불변의 법을 의미하며 실정법 위에 있다고 한다.
반역자의 행위를 중시한 크레온 입장에서는 반역자에게 정당한 장례를 치뤄주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안티고네는 반역자의 존재, 즉 자신의 오빠라는 점을 중시해 신의 불문율(unwritten law)을 앞세워 크레온에게 도전했다.
And I never thought your announcements could give you - a mre human being - power to trample the gods' unfailing, unwritten laws.
두 가치가 공존할 수 있었을까? 책을 보면 그렇지는 않아 보였다. 각자 무엇을 중시하는지 앞세워서 양보할 공간을 주지 않았다. 크레온은 안티고네를 두고 오만하다고 평했지만, 그런 크레온도 오만한 지배자였고 융통성 없는 사람이었다.
극 중후반에는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나타나 '안티고네 살리지 않으면 불행이 닥친다'고 경고하는데, 크레온은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하다가 마음이 흔들렸는지 서둘러 안티고네를 산 채로 가둔 무덤에 가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승자는 있는가?
오빠의 시신을 매장해줌으로써 양심과 숭고함을 지킨 안티고네가 승자처럼 보일까? 국법을 앞세워 오만함과 뻣뻣함을 유지하다가 뒤늦게 마음을 바꾸었고, 결국 주변 인물이 파멸을 맞이한 크레온이 자연법에 굴복했는가?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인다. 안티고네도 인간법의 지배를 받는 테베에서 지내다 보니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아 결국 국법을 어긴 인물로 간주되어 무덤에 감금되었고, 크레온이 도착했을 때 이미 스스로 운명을 결정한 상태였다(혹은 불합리하다고 여기는 운명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길을 택한 걸지도).
크레온도 예언이 진짜로 찾아왔는지 비극을 겪는데, 유일한 아들 하이몬이 무덤에서 크레온을 검으로 공격하다 실패하자 분을 참지 못해 자결했고, 아내 에우리디케는 크레온을 저주하고 마찬가지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크레온이 자신의 오만함과 어리석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에우리디케가 무슨 일을 벌이겠구나라는 건 합창단의 대사에서도 암시하고 있다.
I don't know. If you ask me, a silence so extreme is as dangerous as a flood of silly tears.
개인의 양심과 공익의 충돌, 한치의 양보도 없는 두 신념이 부딪혔고, 안티고네와 크레온 모두 자신 또는 가족이 죽음을 맞이한다. 자연법의 손을 들어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이 책에서 명확한 선과 악은 없어보인다.
주제도 심오하고 등장 인물간 대사가 상당히 흥미로워서 국문 버전으로 다시 한 번 읽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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