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읽은 <숫자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모두가 돈, 돈, 돈을 외치는 세상의 폐단을 짚어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경제적 자유라는 신조가 어떻게 생겼고, 그 뒤에 숨은 원인과 병폐가 무엇인지 짚으며, 그러면서도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지 독자가 함께 고민하길 바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돈에 미친 사람들은 누구인가
저요. 경제적 자유가 가히 시대정신이라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이걸 추구한다고 결고 잘못된 건 아니지만, 만족을 떠나 숫자적, 외형적 가치만 남은 사회로 변모하면서 오직 경제적 자유만이 나와 가족을 살리는 확실한 수단이 되고 말았다.
왜 이리된 것일까? 이러한 심리를 불러일으킨 건 신뢰 부재라고 책에서는 말한다. 국가가 버팀목이 되지 못할 때 도움을 건네고 존재 가치를 발견하게 해주는 건 주변 공공체 집단이었는데, 이마저도 무너진 세상이다. 즉, 각자도생 사회가 되면서 경제적 자유만이 확실한 구제 수단이 되었다.
돈 말고 다른 가치도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확실한 대안도 없다. 그러면 돈을 벌려고 더욱 혈안이 될 뿐이다.
경제적 자유란 삶의 기준을 명확히 세우고 그에 맞는 경제적 수준을 유지하며 진정한 목적을 향해 나가는 건데, 여기에 불필요한 타인과의 경쟁이 끼면서 남들과 끊임없이 숫자로 비교하며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다.
숫자 이면에 숨겨진 생존 투쟁
중간은 가고 싶고, 그러면서 남들과 같은 것도 싫은데 튀고는 싶고... 무난하면서도 평범한 건 싫고, 튀고 싶은데 나대는 것처럼 보이는 건 또 싫다. 그 결과 틀 안에서 어렵게 개성을 추구하고 한국인 특유 눈치보기로 각자 나름의 일가견을 가지게 된다.
반대로 중간은 가겠다는 건 이 중간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심리도 강하게 지배한다. 중간보다 낫다는 걸 재는 기준은 결국 또 물질적, 외형적 가치가 된다.
남들과 비슷하면서도 달라야 한다는 생각으로 위, 아래를 끊임없이 비교하고 있고, 자신의 위치를 재기 손쉬운 방안은 ‘소비’를 통한 차별화와 과시가 된다. 소비 대상은 워낙 폭넓어서 명품, 온라인상 인정욕구를 채울 각종 물건과 공간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특별한 경험을 위해 이런 공간을 방문하는 게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소비가 일상 모든 요소를 잠식한 요즘 실태를 한 번쯤은 되돌아보자는 취지이다.
생존 투쟁은 경쟁(줄세우기라고 개인적으로 해석하고 싶다)과도 이어진다. 누구도 신뢰할 수 없고 다름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불안과 경쟁을 가속화한다. 사회 구조가 바뀌어야 할 과제지만, 튀면 죽는다, 실패하면 끝이다는 인식이 팽배한 사회 구조를 바꿀 수 없는 일반 사람은 현 시스템에 살아남으려고 결국 경쟁이라는 불구덩이에 스스로 몸을 내던진다.
한국형 성공에 얽힌 욕망, 잠복기는 끝났다
놀라운 경제성장으로 모두가 과실을 고루 먹으면서 물질적/외형적 가치에 대한 선망과 타인을 향한 질시, 출세 욕망은 가라앉은 것처럼 보였지만, 경제성장이 한계점에 부딪히면서 다른 형태로 다시금 부각되고 있다.
농경 사회에서의 불안 요소는 물리적 생존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불안 요소는 사회적 생존인데, 문제는 자아실현 욕구는 충족하고 싶고, 그런데 삶에서 고려할 요소는 늘어나는데 미래는 한 치 앞도 안 보여 불확실하고, 경쟁은 격화하는데 믿고 몸을 맡길 공동체는 더는 없고... 결국 믿을 건 자산이고 수치화된 가치로 남과 비교하며 결핍을 채우고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 있다.
젊은 세대의 부동산 영끌은 왜 나타났는가? 작게 시작하지 않고 두 남녀가 최소한의 조건을 갖춰 만나야 합당하다고 여겨지는 게 젊은 세대 탓일까? 기성세대가 자라온 환경에서 해석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본다.
젊은 세대는 어렸을 적부터 누려온 ‘삶의 기본값’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고, 이는 사회적 생존을 위한 투쟁, 즉 물질적 가치와 사회적 인정을 얻으려는 무한 경쟁에 이들을 몰아넣는다. 노력해서 이루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데, 소위 평균에서 밀려나면 끝이라는 불안감이 젊은 세대의 마음을 잠식한다.
숫자 너머 새로운 도약
그렇다고 무너진 공동체를 무작정 되살리는 건 답이 아니다. 이미 한국 사회는 개인주의 사회로 변한 구석이 있다. 옛 공동체로 무작정 돌아가기보단 우리 사회가 처한 상황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공감과 연대보다 피아 식별과 편 가르기가 만연한 사회 분위기에서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권리를 보장하는 공동체를 되살리자는 구호는 어불성설이다.
성공의 근간이 하고 싶은 일이 아닌, 돈과 자산이 점점 명확해지는 사회에서는 결국 사회가 제시하는 경로를 이탈하지 않는 게 최우선이 되고 만다.
-> 우리 사회는 이 책을 포함해 원인을 정확히 짚는 사례가 많은데, 정착 나오는 정책은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성을 존중해 남들과 같은 루트를 따라야만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루트를 택해도 삶에 만족할 수 있도록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책에서는 말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해결할 과제가 정말 많다. 능력위주 공정한 경쟁의 장을 열어두려면 직급과 직업간판의 고착화를 누리려고 하는 특정 집단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이며, 사회적 신뢰가 무너진 상태에서 사회경제적 욕망의 핵심인 돈과 자산을 내려놓고 다른 선택을 강요하는 게 가능하기나 할지...
요약: 이 책은 돈을 버리고 석기시대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니다. 이 사회라는 열차가 이대로 선로를 이탈하기 전에 브레이크를 밟고, 정비하고 재출발하자는 취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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