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이어령 작가의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중 세 번째 책으로, AI의 등장, 알파고 돌풍으로 한때 국내가 떠들썩했던 상황을 되짚어보며, 앞으로 한국인이 AI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친절히 설명해 주는 책.
AI에 관해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주시고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합친 '디지로그'라는 말로 앞으로의 사회 현상을 해석했는데, 영면에 드시기 전까지 조금 더 오래 사셔서 챗GPT의 돌풍도 목격하시고 이에 대한 새로운 책도 냈으면 어땠을까라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남는다.
IT 강국이라고 하기엔 조금 부끄러운 지금
컴퓨터 교육이라고 하면 워드와 엑셀을 가르치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 책 내용을 빌려서 말하자면 이건 컴퓨터를 쓰는 방법, 일종의 소비를 가르치는 거지 만들어 놓은 걸 쓰는 사람에서 쓸 것을 만드는 사람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나마 코딩 교육, 더 나아가서 AI 교육이 요즘 슬슬 전파되려고 하는 건 오히려 다행인 걸까. 하지만 교육의 질이 낮으면 그만큼 먼 길을 돌아갈 수밖에 없겠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 이벤트 당시를 복기하면, AI 개발의 핵심 인물에 한국인은 없었다. 테스트에 참가해 준 이세돌이 핵심 인물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공간을 빌려준 호텔 관계자들? (그런데 포시즌스 호텔도 사실은 국제적 호텔 체인이다)
국내 언론에서는 그저 엔터테인먼트에 가깝게 인간과 AI의 싸움에만 포커스 하고, 이세돌이 대국에서 패배할 때마다 연신 호들갑스러운 기사만 냈던 것 같다. 78수 신의 한 수에 서사만 잔뜩 실은 건 덤.
IT 강국이라고 하면서 우리는 왜 알파고 같은 AI를 연구 개발하지 못하고 있는가. 그러면서도 AI의 위협설부터 꺼내는가. 실학파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던 조선조 유생들처럼 큰 이야기 좋아하고 공리공담을 즐기는 그 문화유전자가 다시 꿈틀댔는가.
여담으로, 이세돌이 78수 신의 한 수로 승리한 제4국에서도 NHK 기자는 '건강과 보건 분야에서 큰 오류가 나면 어떻게 할 건가'라는 예리한 질문을 던진 반면, 국내 기자들은 '다른 시스템 썼냐', '알파고가 실력을 맞춰줬냐' 등 수준에 맞지 않는 질문이 나왔다.
고개를 넘어라
제아무리 AI라도, 차디찬 장비와 클라우드, 빅데이터로 만들어졌다 해도 아날로그의 실세계로 나오려면 크고 작은 고개를 넘어야 한다. 책에서는 디지털 제국을 쌓은 구글을 예시로 들며 구글이 어떤 고개를 넘어야 하는지 짚었다.
- 자율주행차에서 보듯이 교통법과 제도가 나와야 한다.
- 구글 북스에서 보았듯 저작권 같은 법률과 제도가 정비되어야 한다.
- 구글 글라스에서 나타난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 분리된 문화적 고개를 넘어야 한다.
- 그리고 가장 큰 고개는 생명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막연한 공포감은 버릴 때가 왔다. 저자는 한국인이 다시 AI 시대의 주역이 되려면 생명사상을 가장 잘 알고, 인공지능이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따뜻한 가슴의 인(仁)을 가졌고, 세계 어느 국민보다 넘치는 창의력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차피 AI는 상용화되려면 결국 아날로그 세계로 넘어와야 한다. 그럴 때 한국인들은 특유의 해학을 보여주면서 AI를 유익하게 활용할 잠재력이 있다는 게 아닐까로 해석하고 싶다.
두고 보라.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대립하는 두 세계를 균형 있게 조화시켜 통합하는 한국인의 디지로그 파워가 미래를 이끌어갈 날이 우리 눈앞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전반적으로 알파고 쇼크부터 시작해 AI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향해 가야 하는지 마치 어린아이에게 들려주듯 풀어써준 책이다. 알파고 다음으로 또 다른 충격을 선사한 생성형 AI에 관해 통찰을 듣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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