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정신의학과 뇌 분야 전문가로 인정받는 오카다 다케시가 쓴 이 책은 타인이 타인의 마음을 어떻게 교묘하고 은밀하게 조종하는지 깊이 있게 탐구한 책이다. 테러리스트는 어떻게 양성되는지, 사람들은 어떻게 사이비 종교와 불법 다단계에 빠지는지, 냉전 당시 세뇌는 어떻게 시행되었는지 등 다양한 사례와 함께 원인을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목적은 이것을 읽고 나서 다른 사람의 심리를 지배하려는 게 아닌, 심리 조작의 원리를 이해하고 똑같은 수작을 부리려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며 사는 방법을 찾는 게 주목적이다.
태어날 때부터 테러리스트는 아니다
꽤나 정상적으로 보인 사람도 많았을 정도인데 그렇다고 이들이 심리 조작을 받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느끼게 수준 높은 조작이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책에서는 '터널'이라는 과정을 통해 소위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 어떻게 테러리스트가 되는지 설명한다.
즉, 양성 과정은 마치 기다란 터널을 통과하는 것과 같은데, 이 시기에는 외부 정보와는 모두 차단된 채 비슷한 집단과 함께 지내며 규칙과 가치관에 자기도 모르게 지배당하고, 출구로 나아갈 때는 어느 지점에서 시야가 좁아지며 목적만 좇게 된다.
이들의 공통점으로는 높은 이상, 소외감과 사회 부적응력이 있는데 사회에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정체성에 혼란이 온 사람들에게 자신을 인정해 주겠다는 집단이 있으면 그곳이야말로 살아갈 곳이 된다.
누가 저지르고, 누가 당하는가
타인을 심리 조작으로 지배하려는 사람은 폐쇄적인 집단에서 가장 강한 위치에 있고, 약자에 대한 배려, 윤리의식,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고, 타인을 지배함으로써 쾌락을 얻는다. 일본에서 논란이 되었던 옴진리교 창시자 아사하라 쇼코가 이런 예시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 횡포를 부리는 이기적인 상사, 집단 내 왕따 주동자도 이런 심리 조작을 부린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심리 조작에 당하는 사람은 왜 당할까?
의존성이 강한 사람이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자기를 과소평가하고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 중요한 결정을 스스로 내리지 못하는 사람이 남의 말에 휘둘리기 쉽다.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려서부터 부모의 역할이 큰데, 난폭하고 변덕스러운 부모 밑에서 자라거나, 과잉보호, 지나친 간섭을 일삼는 부모 밑에서 자라도 똑같이 의존성 인격장애가 형성될 가능성은 크다. 주체성을 길러주는 게 중요한 대목이다.
심리 조작의 원리
심리 조작은 표현 자체가 무섭긴 해도 긍정적으로 쓰이면 운동선수와 수험생의 집중력 향상, 사원 능력 계발 목적으로 쓰일 수 있지만, 방향이 비뚤어지면 사상 개조, 북한식 강제수용소의 강압적인 교화로 쓰일 위험이 있다는 점 조심해야 한다. 목적은 달라도 기본 원리 공통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정보 입력을 제한되거나 과잉되게 한다 - 아예 외부 세계와 차단시키거나 역으로 지나친 정보를 흘려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특히 후자의 경우, 과잉 정보에 노출된 지친 현대인의 모습과도 겹치는데 홍수처럼 넘치는 정보에서 무기력함을 느낄 위험이 크다.
→ 정보가 극도로 부족한 상태에 놓이면 뇌는 어떤 정보라도 기존의 신념과 충돌하는 한이 있어도 흡수하고 받아들인다. 반대로 정보가 너무 많아도 뇌는 주체적인 사고력과 판단력을 잃어버려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만다.
→ SNS, 스마트 기기 발달의 어두운 면이 이 점을 가속화하는 것만 같다.
2. 뇌를 지치게 만들어 생각할 여유를 빼앗는다 - 쉴 새 없이 말과 질문을 퍼붓는다든지, 수면과 영양을 저하시키거나 중노동 등으로 피로를 누적시켜 판단 능력을 빼앗는 경우다. 실생활에서는 피로에 찌든 직장인들의 피폐함, 지나친 공부 강요로 매사에 의욕을 상실한 아이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아무 의미 없이 만성적인 피로 상태를 강요하는 조직이나 생활에는 미래가 없다.
3. 구제를 확신하고 불멸을 약속한다 - 1, 2의 단계를 거치며 불안감이 생긴 사람들에게 강한 확신으로 구원을 약속하는 존재가 접근해 온다.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약속한 카리스마 있는 척하는 존재에게 사람들은 혹하게 된다. 과거 독일이 나치즘에서 새로운 의미와 희망을 느낀 이유는 당시 삶에서는 희망이 안 보였다고 여겼기 때문.
4. 사람은 사랑받고 싶어 하며 배신을 두려워한다 - 심리 조작을 거는 자는 자신이 동료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친밀감, 애정, 공감을 적극적으로 보인다. 그렇게 상대방의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신뢰를 쌓아 의지하게 만든다. 인간의 인정 욕구를 자극하는 셈인데 사람은 자신을 인정해 주는 존재를 배신하는 걸 꺼려하는 사회적 심리를 역이용하는 것이다. 배신당할 수 있다는 불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은 '죄수의 딜레마'를 꼽을 수 있다.
5. 자기 판단을 불허하고 의존 상태를 유지시킨다 - 건전한 조직과 비정상적인 조직의 차이는 자유로운 발상이나 주체적인 판단이 얼마나 존중되는가 하나로 갈릴 수 있다. 소위 우두머리만의 의사 결정만 따르게 하고, 타인의 의사까지 모두 결정해 버리면 심리 조작의 종속 상태가 유지되고 만다. 이 점은 양육 면에서 아이의 주체성을 갖지 못하게 하는 부모에게서도 보일 위험이 크다.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가
심리 조작의 근본적인 문제는 타인의 의존성을 악용하는 것이기에 주체성을 키우는 게 과제이다.
피해자를 치유하는 과정은, 대놓고 심리 조작의 원흉을 공격적이고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중립적인 자세로 공감해 주면서 어떻게 거기에 이끌리게 되었는지, 그러면서 다양한 사건을 회상하며 털어놓게 하면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돌이켜 보게 한다.
→ 어떻게 보면 심리 조작을 거는 사람들의 행위와도 비슷한 접근 방식이다.
또한, 신뢰할 수 있는 존재와의 유대감(이를테면 가족 등)을 확립하고, 나 자신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자기의식을 회복해야 흔들리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심리 조작 문제는 결국 자립과 의존의 문제로 귀결된다. 얼마나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느냐가 핵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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